우주에도 시작이 있었대요. 그 '태초'는 창세기의 태초와 같은 것일까요? 풍선과 다이얼 비유로 쉽게 알아봐요.
청소년 버전밤하늘을 올려다본 적 있나요? 그 크기를 함께 느껴봐요.
빛은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 돕니다. 그런데 그 빠른 빛으로도 달까지 1.3초, 가장 가까운 별까지는 4년 넘게 걸립니다. 우리 은하 하나를 가로지르는 데만 10만 년이 걸리고요. 그리고 우주에는 이런 은하가 수천억 개 더 있습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 시편 8:3-4, 개역개정
이 시를 쓴 다윗도 우리처럼 밤하늘 앞에서 작아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느낌 다음에 나온 말은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가 아니라 "그런데도 하나님이 나를 생각하신다"였습니다. 이 시리즈는 이 두 가지 — 우주의 압도적인 크기와, 그럼에도 있는 관심 — 를 함께 붙잡고 갑니다.
우주도 태어난 날이 있다는 걸, 과학자들은 어떻게 알았을까요?
풍선 비유: 풍선에 점을 여러 개 찍고 불어보세요. 점들이 서로 멀어지죠? 그런데 어느 점에서 봐도 "다른 점들이 나에게서 멀어진다"고 느껴집니다. 특별한 중심이 없어요. 우주도 이렇게 팽창하고 있습니다 — 모든 은하가 서로에게서 멀어지고 있어요.
1929년,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은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 빨리 우리에게서 멀어진다는 것을 관측으로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이 팽창을 시간을 거꾸로 감아보면 어떻게 될까요? 모든 것이 점점 더 가까워지다가, 아주 먼 과거의 어느 순간에는 상상할 수 없이 뜨겁고 작은 한 점에 모여 있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그 순간이 바로 우주의 '시작'입니다.
사제복을 입은 물리학자가 있었습니다.
조르주 르메트르(1894-1966)는 벨기에의 가톨릭 사제이자 물리학자였습니다. 놀랍게도 그는 허블보다 2년 먼저인 1927년, 수학 계산만으로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처음에는 아인슈타인조차 "당신의 계산은 맞지만, 물리학적으로는 끔찍하다"며 믿지 않았어요.
그런데 르메트르에게서 정말 인상 깊은 건 다른 부분입니다. 1951년, 교황 비오 12세가 "빅뱅이 성경의 창조를 과학적으로 증명했다!"고 말하려던 순간, 다른 누구도 아닌 르메트르 신부님이 조용히 나서서 이를 만류했다고 전해집니다.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사제였던 사람이, 오히려 "과학이 신앙을 증명했다"는 말을 가장 조심스러워했다는 것 — 이것이 이 시리즈 전체가 지키려는 태도입니다.
창세기와 과학은 서로 다른 질문에 답하고 있어요.
창세기 1장은 "누가, 왜" 만드셨는지를 답합니다 — 하나님이, 사랑으로, 목적을 가지고. 과학은 "어떻게, 언제" 그 일이 일어났는지를 답합니다 — 138억 년 전, 빅뱅으로부터. 두 질문은 싸우는 게 아니라 서로 다른 걸 묻고 있을 뿐입니다.
"성경은 하늘이 어떻게 도는지가 아니라, 하늘에 어떻게 가는지를 알려준다."
—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인용한 말 (대공비 크리스티나에게 보낸 편지, 1615)
과학과 신앙 사이의 첫 큰 갈등이라 불리는 갈릴레오 사건조차, 사실은 "성경 대 과학"의 싸움이 아니라 교회 정치와 개인 갈등이 얽힌 복잡한 사건이었다는 것이 오늘날 역사학자들의 평가입니다.
우주를 만드는 다이얼이 있다면? 카드를 눌러 뒤집어 보세요.
우주가 만들어지자마자 다시 쪼그라들어 버려요. 별도, 행성도 생길 시간이 없습니다.
물질이 서로 뭉치지 못해 별도 은하도 만들어지지 못합니다.
별 속에서 탄소가 만들어지는 반응 자체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탄소가 없으면 우리 몸도 없어요.
물질이 너무 빨리 흩어져서 별도 은하도 뭉쳐지지 못합니다.
이렇게 몇 개의 숫자만 아주 조금 달랐어도 별도, 탄소도, 우리도 존재할 수 없었을 거라는 게 과학자들의 계산입니다. 마치 누군가 우주라는 라디오의 주파수를 정확히 맞춰놓은 것처럼요. 이걸 "우연이다"라고 보는 과학자도, "설계로 보인다"라고 보는 과학자도 있습니다 — 이 논쟁은 대학생 버전에서 더 깊이 다룹니다.
아마 한 번쯤 들어봤을, 또는 스스로 물어봤을 질문이죠.
"우주에 시작이 있다면 그걸 시작한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배웠는데, 그럼 "하나님도 시작이 있고, 그 하나님을 만든 또 다른 무언가가 있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은 아주 자연스러운 질문입니다. 놀리는 질문이 아니라 좋은 질문이에요.
"시작이 있는 것"에는 원인이 필요하다는 원리가 적용되는 건 시작이 있는 것들에만 해당합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하나님은 애초에 시작이 없는 분 — 스스로 존재하는 분입니다. "만들어진 신"이라면 그건 애초에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시작이 없는 존재"는 우리의 일상 경험 밖에 있는 개념이라 상상하기 어려운 게 정상이에요. 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은 질문이 있습니다 — 이 시리즈 전체가 그런 정직한 겸손을 지키려고 합니다.
먼 미래에 대한 두 가지 이야기를 나란히 놓아 봅니다.
아주 먼 미래(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이 먼 미래입니다), 별들은 하나씩 연료를 다 쓰고 꺼져갈 거라고 과학자들은 예측합니다. 무섭게 들릴 수 있지만, 이건 내일이나 우리 세대의 이야기가 전혀 아니고, 우주가 얼마나 오래, 크게 지속되는지를 보여주는 숫자일 뿐입니다.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사 65:17)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 21:5)
성경은 우주가 그냥 버려지는 게 아니라 새롭게 된다고 약속합니다. 소멸이 아니라 변화라는 것이죠. (창조 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돌봄은 ECO 시리즈에서 더 깊이 다룹니다.)
경이(驚異)는 예배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 시편 19:1, 개역개정
시편 19편을 쓴 사람도 별을 세는 과학자는 아니었지만, 밤하늘을 보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우주의 크기 앞에서 느끼는 "와…" 하는 감탄은, 사실 예배의 아주 오래된 형태입니다.
과학과 신앙, 두 세계를 함께 살았던 네 사람입니다.
10문제로 확인해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