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스리라"의 재발견 — 창조 돌봄의 성경신학을
원문 주해와 신학사, 그리고 오늘의 기후 위기 앞에서 탐구합니다.
땅의 부르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이 만나는 지점에서, 성경적 창조 돌봄 신학을 학술적으로 탐구합니다.
방법론 선언
이 자료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2015)가 정식화한 표현 — "땅의 부르짖음과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the cry of the earth and the cry of the poor) — 을 출발점으로 삼습니다. 창조 세계의 신음과 인간 공동체(특히 가난한 이들)의 신음이 하나로 얽혀 있다는 통찰입니다.
다루는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 과학적 사실 확인 → ② 성경 주해 → ③ 신학사 검토 → ④ 실천적 적용. 이 과정에서 정책 처방(political prescription)과 신학적 원리(theological principle)를 구별하는 것을 방법론의 핵심 훈련으로 삼습니다. 특정 정당·정책 지지가 아니라, 성경이 실제로 말하는 창조 돌봄의 신학을 규명하는 것이 이 자료의 목표입니다.
현대 생태신학 전체를 촉발한 한 편의 논문.
린 화이트 주니어(Lynn White Jr.)는 1967년 저명 학술지 Science에 "The Historical Roots of Our Ecologic Crisis"(우리 생태 위기의 역사적 뿌리)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서구적 형태의 기독교가 ① 자연을 탈신성화(disenchantment)하고 ② 인간을 자연 위에 두는 인간중심주의(anthropocentrism)를 심어줌으로써 현대 생태 위기의 "역사적 뿌리"가 되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루이스 먼크리프(Lewis W. Moncrief, "The Cultural Basis for Our Environmental Crisis," Science 170, 1970)는 비기독교 문명(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삼림 파괴, 중국의 하천 오염, 마야 문명의 환경 훼손 등)에서도 심각한 환경 파괴 사례가 광범위하게 나타난다고 지적하며, 환경 위기를 단일 종교 탓으로 돌리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라고 반박했습니다. 인구 증가, 도시화, 기술 발전, 자본주의적 생산 방식 등 복합 요인이 함께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창 1:28의 "다스리라"가 곧 착취를 명령한다는 화이트의 전제 자체가 히브리어 본문에 대한 오독이라는 반론입니다. 이는 본 자료 S2에서 본격적으로 다룹니다 — 결론을 먼저 말하면, 라다(רדה)는 목자적·왕적 통치를 의미하는 용어로, 폭군적 착취와 구별됩니다.
흥미롭게도 화이트 자신은 기독교인이었으며, 논문 말미에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를 "모든 생태학자의 수호성인 후보"로 제시했습니다. 그는 기독교를 완전히 폐기하자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안에서 더 나은 자연 신학(프란치스코적 겸손과 피조물 형제애)으로 "종교적 재정향"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실제로 197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프란치스코를 "생태 수호성인"으로 공식 선포했습니다.
"다스리라"(창 1:28)와 "경작하며 지키게"(창 2:15)의 원문 분석.
① רָדָה(라다) — "다스리라" (창 1:26, 28)
라다는 고대근동에서 왕적 통치를 가리키는 표준 용어입니다. 시편 72편은 이스라엘 왕에게 기대되는 "다스림"(같은 어근)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 "그가 가난한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며 궁핍한 자를 도와주며 압박하는 자를 꺾으리로다"(시 72:4), "그는 궁핍한 자가 부르짖을 때에 건지며... 그는 그들의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원하리니"(72:12-14). 고대근동 왕 이데올로기에서 왕은 종종 "신의 목자"로 묘사되었습니다. 따라서 창세기의 라다는 목자적 왕권이지, 폭군적 착취가 아닙니다.
② כָּבַשׁ(카바쉬) — "정복하라" (창 1:28)
카바쉬는 정직하게 말해 강한 동사입니다(다른 곳에서 군사적 정복·복속의 의미로도 쓰임, 민 32:22, 수 18:1). 그러나 창세기 문맥에서 주류 해석은 이를 아직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을 개간하고 경작 가능하게 만드는 노동으로 읽습니다. 강한 동사임을 인정하되, 이 힘이 무엇을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지가 다음 절에서 즉시 제한됩니다.
③ 결정적 문맥 증거 — 창 1:29-30의 채식 급식
다스림의 명령(1:28) 직후, 하나님은 사람과 동물 모두에게 채식 식단을 지정하십니다: "내가... 모든 채소와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거리로 주노라"(창 1:29-30). 폭력적 포식이 아니라 폭력 없는 통치가 원래 창조 질서의 그림입니다. 육식이 허용되는 것은 홍수 심판 이후(창 9:3)에야 등장하는 양보 조항입니다.
④ עָבַד(아바드)·שָׁמַר(샤마르) — "경작하며 지키게" (창 2:15)
창세기 2:15은 사람의 소명을 다른 언어로 다시 서술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아바드) 지키게(샤마르) 하시고." 이 두 동사의 조합은 놀랍게도 민수기 3:7-8, 8:26에서 레위인의 성막 직무를 가리키는 표준 어휘 쌍으로 재등장합니다. 이는 에덴이 원형 성소(proto-sanctuary)이며, 아담이 왕이자 제사장적 정원사로 임명되었음을 시사합니다.
| 본문 | 핵심 동사 | 주해적 함의 |
|---|---|---|
| 창 1:26, 28 | רָדָה (다스리다) | 목자적·왕적 통치 (시 72편과 병행) |
| 창 1:28 | כָּבַשׁ (정복하다) | 땅의 개간·경작 (강한 동사, 남용 경계 필요) |
| 창 1:29-30 | 식단 지정 | 채식 급식 — 폭력 없는 통치의 증거 |
| 창 2:15 | עָבַד·שָׁמַר (섬기다·지키다) | 제사장적 직무 (민 3:7-8과 병행) |
노아 언약부터 예언서까지 — 구약 전체에 흐르는 생태적 신학.
노아 언약 (창 9:8-17)
홍수 이후 하나님이 맺으신 언약에서 "모든 생물과"라는 표현이 짧은 본문 안에 무려 6회 반복됩니다(9:10, 12, 15, 15, 16, 17). 언약의 파트너는 노아 한 사람이나 인류 전체가 아니라, 동물을 포함한 모든 생물입니다. 무지개는 인간만을 위한 표가 아니라 이 우주적 언약 전체의 표입니다.
안식 계명과 땅
출애굽기 23:10-12은 안식일에 소와 나귀도 쉬게 하고, 안식년(7년째 해)에는 땅 자체가 쉬어야 한다고 명령합니다. 레위기 25장은 안식년과 희년(50년째 해) 제도를 상세히 규정합니다.
율법의 동물·자연 배려 규정
예언서의 생태적 심판과 회복
심판: 호세아 4:1-3은 언약 위반(살인, 거짓, 간음)의 결과로 "땅이 슬퍼하며 거기 사는 모든 것이 쇠잔할 것이요 들짐승과 공중의 새가 없어지고 바다의 고기도 잡히지 아니하리라"고 선언합니다 — 도덕적 죄가 생태적 재앙으로 이어지는 연쇄 구조입니다. 렘 12:4, 사 24:4-6도 유사한 패턴을 보입니다.
회복: 이사야 11:6-9의 평화의 왕국(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이사야 35장의 광야가 꽃피는 회복 비전, 호세아 2:18의 "그 날에는 내가 그들을 위하여...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의 곤충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며"에서 동물과의 언약이 다시 갱신됩니다.
성경 스스로 인간중심주의를 교정하는 놀라운 본문들.
고난받는 욥에게 하나님이 답변하시며 열거하는 목록은 놀랍습니다: 인간에게 아무 쓸모 없는 광야에 내리는 비(38:26-27), 들나귀와 들소(39장, "누가 들나귀를 놓아 자유롭게 하였느냐"), 타조의 어리석지만 자유로운 삶, 베헤못과 리워야단(40-41장, 인간이 길들일 수 없는 거대한 짐승들). 리처드 바우캄(Richard Bauckham)은 이를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창조는 인간의 유용성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답변 자체가 성경 안에서 인간중심주의를 교정하는 신학적 장치입니다.
시편 104편은 창조 전체를 찬양하는 "생태 시편"으로 불립니다. 사자가 먹이를 하나님께 구하고(104:21), 사람은 여러 피조물 중 하나로 담백하게 등장하며(104:23), 레바논의 백향목은 "여호와의 나무"(16절, 사람이 심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심으신 나무)로 묘사됩니다.
해와 달과 별, 바다의 짐승과 깊음, 불과 우박과 눈, 산과 나무, 짐승과 새 — 이 모든 것이 여호와를 찬양하도록 초청받습니다. 피조물의 존재 이유는 인간을 위한 효용이 아니라 찬양 자체입니다.
"어차피 불탈 세상"이라는 통념에 대한 본문비평적 도전.
로마서 8:19-23 — 탄식하는 피조물
바울은 "피조물"(κτίσις, 크티시스)이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을 함께 바라며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다고 말합니다(8:19-22). 피조물은 구원 드라마의 배경(backdrop)이 아니라 참여자(participant)입니다.
골로새서 1:15-20 — 만물의 화해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τὰ πάντα, 타 판타)이 창조되었고("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그 안에서 함께 서 있으며("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를 통해 화해됩니다("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우주적 기독론의 정점입니다.
요한계시록 21-22장 — 하늘에서 땅으로
새 예루살렘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묘사됩니다(21:2). 구원의 방향은 인간이 땅을 탈출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땅으로 강림하는 것입니다("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21:3). 계 11:18은 "땅을 망하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때"라고까지 말합니다 — 생태 파괴가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 독법 | 사본 근거 | 종말론적 함의 |
|---|---|---|
| κατακαήσεται (불타 없어지리라) | 후대 다수 사본, KJV 저본 | 소각 종말론 — 땅은 폐기되고 대체됨 |
| εὑρεθήσεται (드러나리라, 부정어 없이) | א, B 등 최량 사본 | 정화·갱신 종말론 — 땅은 심판을 통해 정화되어 드러남 |
| οὐχ εὑρεθήσεται (결코 드러나지 않으리라) | NA28 실제 채택 본문 — 그리스어 사본 근거 없이 부정어 추가(콥트어·시리아역만 지지) | 소각과 유사한 "사라짐"에 가깝지만, 논쟁적 이본(異本)이라는 점 자체가 학술적 쟁점 |
사본상 가장 잘 지지되는 독법(부정어 없는 εὑρεθήσεται)이 "드러남"을 뜻한다는 사실 자체가 "어차피 불탈 세상이니 환경 보호는 무의미하다"는 대중적 논리의 본문적 토대를 흔듭니다. 다만 NA28이 인쇄한 본문(οὐχ εὑρεθήσεται)은 이와 다른, 별도의 편집적 판단임을 구분해야 합니다(참고: J. Richard Middleton, A New Heaven and a New Earth; N.T. Wright, Surprised by Hope).
추가로 마 19:28의 παλιγγενεσία(팔린게네시아, "만물의 갱신")와 행 3:21의 "만물을 회복하실 때"도 같은 방향(폐기가 아닌 회복)을 가리킵니다.
다섯 가지 모델을 비교합니다. 카드를 클릭해 핵심 논거와 난점을 확인하세요.
1960년대부터 오늘까지 — 생태신학이 형성되어 온 궤적.
가톨릭 교회의 대표적 생태 문서를 개신교 독자의 시각에서 읽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2015.5.24), 한국어판 『찬미받으소서』(한국천주교주교회의). 아시시의 프란치스코의 "태양의 노래(피조물의 찬가)" 첫 구절("나의 주여, 찬미받으소서")에서 제목을 따왔습니다. 6개 장에 걸쳐 공동의 집에서 일어나는 일 → 생태 위기의 뿌리에 대한 신학적·인간학적 분석 → 통합 생태론 → 실천 방향 → 교육과 영성의 순서로 전개됩니다.
환경 위기·경제 불평등·사회적 배제·문화적 상실은 서로 분리된 위기들이 아니라 하나의 복합적 위기라는 통찰입니다. 환경 정책과 사회 정의를 분리해서 다룰 수 없다는 것이 이 개념의 핵심입니다.
모든 문제를 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사고방식(technocratic paradigm)이 자연을 도구화하고 지배 논리를 강화한다는 비판입니다. 이는 기술 자체의 거부가 아니라, 기술을 우상화하는 태도에 대한 교정입니다.
지구를 "공동의 집(common home)"으로 부르며 모든 인류가 공유하는 책임을 강조합니다. 에큐메니칼 총대주교 바르톨로메오스 1세의 표현을 인용해 "생태 파괴는 죄"라고까지 말하며, 개인적·공동체적 삶의 방식을 바꾸는 "생태적 회심(ecological conversion)"을 촉구합니다.
2023년 10월 4일 발표된 권고 『라우다테 데움』은 COP28을 앞두고 발표되었으며, 라우다토 시보다 훨씬 긴박한 어조로 기후 행동의 지연을 비판합니다.
세 층위를 구별해서 다룹니다.
① 과학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AR6 종합보고서(2023)는 "인간 활동에 의한 온난화는 명백하다(unequivocal)"고 결론짓습니다. 1.5°C 목표는 파리협정(2015)이 설정한 마지노선이며, 2024-25년 지구 평균기온은 이미 산업화 이전 대비 약 1.5°C 상승에 근접했습니다. 2025년 대기 중 CO₂ 농도는 약 427-429ppm으로, 최근 200만 년래 최고 수준입니다.
② 국제정치 타임라인
③ 신학적 응답 스펙트럼 — 공정하게 제시
캐서린 헤이호(『Saving Us』, 텍사스텍 기후과학자)는 과학적 합의를 신앙과 결합해 행동을 촉구합니다. 세계복음주의연맹(WEA)도 유사한 입장.
콘월 연합(Cornwall Alliance, 바이스너 등)은 급진적 기후 정책이 화석연료 접근성을 낮춰 빈곤층에 더 해를 끼칠 수 있다고 우려하며, 창조 세계가 인간에게 넉넉히 제공되도록 설계되었다는 성경 해석(풍요로운 지구관)을 근거로 정책적 신중론을 제기합니다.
기후 절망(climate grief)이 확산되는 오늘, 신학은 절망도 무관심도 아닌 소망에 근거한 행동을 제안합니다(S12 참조).
동물에 대한 신학적 성찰의 학문적 지형과 오늘의 쟁점들.
앤드루 린지(Andrew Linzey)는 『Animal Theology』(1994)로 이 분야를 개척했으며, 세계 최초의 신학·동물복지 학술직(옥스퍼드 맨스필드 칼리지)을 보유한 인물입니다. 데이비드 클라프(David Clough)는 『On Animals』 I·II(2012/2019)에서 조직신학적으로 이 주제를 집대성했습니다.
동물과의 언약(창 9, 호 2:18), 니느웨의 "가축도 많이 있는" 것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욘 4:11), 이사야 11장의 평화 비전(이리와 어린 양)이 동물 신학의 성경적 토대를 형성합니다.
창 9:3은 홍수 이후 육식을 명시적으로 허용합니다("산 동물은 모두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그러나 이사야 11장의 종말 비전은 포식이 사라진 평화의 세계를 그립니다. 두 본문 사이의 긴장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일부 학자는 육식을 창조 원형이 아닌 타락 이후의 "잠정 윤리(interim ethic)"로 이해합니다.
잠언 12:10("의인은 자기 가축의 생명을 돌본다")을 현대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가 실천신학의 시급한 과제로 제기됩니다.
동물 실험의 윤리적 한계, 동물을 오락(투우, 서커스 등)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신학적 평가도 동물 신학의 논의 대상입니다. 이 자료는 채식주의를 정답으로 제시하지 않되, 진지하게 씨름해야 할 신학적 선택지로 소개합니다.
교단과 기관을 넘어선 창조 돌봄 운동의 지형도.
1989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디미트리오스 1세가 매년 9월 1일을 "창조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로 제정했습니다. 후임 바르톨로메오스 1세는 환경 파괴를 죄로 규정하는 신학적 작업을 이어가며 '녹색 총대주교(Green Patriarch)'라는 별칭을 얻었습니다. 이 전통에서 확산된 창조 절기(Season of Creation)는 9월 1일부터 10월 4일(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축일)까지 이어지며 초교파적으로 확산되었습니다.
A Rocha(1983, 피터 해리스 설립) — 조류 보호에서 시작해 국제적 자연 보전 운동으로 성장한 복음주의 기관. Au Sable Institute — 복음주의 환경학 연구·교육 기관. 복음주의환경네트워크(EEN, 2002) — "예수님이라면 무엇을 운전하실까(What Would Jesus Drive?)" 캠페인으로 알려짐. 세계교회협의회(WCC)도 오랜 생태 신학 흐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기독교환경운동연대는 1982년 산업화로 인한 공해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 주도로 설립된 '한국공해문제연구소'(초대 이사장 함세웅 신부, 초대 소장 전태국 목사)에서 출발했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환경단체로 평가됩니다. 1997년 조직을 확대 개편해 현재의 이름이 되었고, 부설 (사)한국교회환경연구소를 두고 있습니다. 여러 교단이 환경주일을 지정해 지키고 있습니다.
2025년은 라우다토 시 발표 10주년입니다. 레오 14세 교황은 10월 1일 카스텔 간돌포 마리아폴리 센터에서 열린 국제회의 "Raising Hope for Climate Justice"(라우다토 시 운동, 인간개발촉진성, 카리타스 인터내셔널리스 등 공동 주최)에서 개회 연설을 했습니다. 그는 "자료 수집에서 돌봄으로, 환경 담론에서 생태적 회심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으며, "우리는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그분의 피조물을 경멸할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연설 후 그린란드에서 채취한 2만 년 된 얼음 조각을 축복하는 상징적 의식도 있었습니다. 이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태 유산을 계승하는 행보로 평가됩니다.
신학적 성찰을 삶의 자리로 옮기는 마지막 단계.
음식의 신학
노먼 워즈바(Norman Wirzba)는 『Food and Faith』에서 먹는 행위 자체가 신학적 행위라고 말합니다. 감사(음식이 선물임을 인정), 절제(과잉 소비의 거부), 식탁 공동체(함께 먹음으로 형성되는 관계)가 핵심 개념입니다.
소비와 안식
안식일은 반(反)탐욕의 리듬입니다 — 정기적으로 생산과 소비를 멈추는 훈련. 바울의 자족 고백("나는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배운 것이 있어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빌 4:11-12)은 광고가 지배하는 시대에 대한 신학적 저항입니다.
교회 실천 설계 — '녹색 교회' 체크리스트
생태신학을 형성해온 9인의 학자.
역사학자. 생태 위기와 기독교 신학의 관계를 최초로 논쟁화한 논문의 저자. 이후 반세기 생태신학 논의의 출발점.
복음주의 변증가. 생태 위기에 대한 복음주의 진영 최초기의 신학적 응답을 제시.
독일 조직신학자. 안식일 창조론과 성령론적 생태신학으로 창조 세계 안에 내재하시는 하나님을 강조.
신약학자. 청지기 모델을 비판하고 "피조물 공동체" 개념을 제시. 욥기·시편의 인간중심주의 해체 논의를 정교화.
구약학자. 농경학적 관점에서 성경을 읽는 "아그라리안 해석학"의 대표자.
생태여성신학자. "세계=하나님의 몸" 모델로 신학적 상상력을 확장했으나 범재신론 경향에 대한 비판도 받음.
부자(父子) 성경학자. 신약학(더글러스)과 생태학(조너선)의 학제간 협업으로 균형 잡힌 복음주의 창조돌봄 신학을 제시.
구약학자. 고대근동 배경 연구를 통해 창세기 청지기직 신학을 대중적으로 소개.
텍사스텍 대학 기후과학자이자 복음주의 그리스도인. 과학과 신앙 사이의 대화를 이끄는 대표적 커뮤니케이터.
※ 교황 프란치스코·레오 14세는 S8·S11에서 문서·연설 맥락으로 다룹니다.
이 자료에서 사용된 핵심 학술 용어 16항.
6개의 열린 토론 주제 — 정답이 없는 질문들과 씨름하세요.
이 자료가 참고한 주요 문헌 목록입니다.
12문항 — 학습한 내용을 점검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