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을 정복하라"는 말씀은 착취 면허였을까,
아니면 정원사의 위임장이었을까?
창세기 1장을 읽으면 이상한 후렴구가 계속 반복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드시고 몇 번이나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 7번의 감탄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빛을 만드시고, 바다와 육지를 나누시고, 식물을 만드시고, 해와 달과 별을 만드시고, 물고기와 새를 만드시고, 육지 동물을 만드실 때마다 "좋았더라"(히브리어 토브)라고 감탄하십니다. 사람을 만드신 후에는 "심히 좋았더라"고 하시죠. 총 7번입니다. 이 숫자 7은 히브리어에서 '완전함'을 뜻합니다.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들, 태양과 달의 정교한 움직임,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딱 알맞은 거리에 있어서 물이 얼지도 끓지도 않는 것 — 이 모든 것이 "좋았더라"는 하나님의 감탄 속에 들어 있습니다. 우주는 우리가 존재하기도 전부터 하나님이 기뻐하신 작품입니다.
바다 속을 헤엄치는 물고기, 하늘을 나는 새, 들판을 뛰는 짐승들. 성경은 이들이 사람을 위한 재료 창고가 아니라, 하나님이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축복하신(창 1:22) 독립된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에게 축복하시기 전, 동물들에게 먼저 축복하셨습니다.
지구는 하나님의 작품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집입니다. 우리 동네의 나무, 하늘, 강, 바람도 이 '좋았더라'의 이야기 안에 있습니다. 창조 세계를 돌보는 것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내가 사는 동네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창 1:28 "땅을 정복하라... 다스리라"는 말씀, 착취해도 된다는 뜻일까요?
정원사 왕 비유
옛날 어느 나라에 두 종류의 왕이 있었다고 상상해봅시다. 한 왕은 백성들을 쥐어짜서 세금을 걷고 노예처럼 부려먹었습니다. 다른 왕은 백성들이 잘 살도록 돌보고,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을 도와주고, 밭이 잘 자라도록 관개 시설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둘 다 "왕"이지만 완전히 다른 왕이죠. 창세기가 사람에게 맡긴 "다스림"은 두 번째 왕의 모습에 가깝습니다.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것을 마음대로 짓밟고 써버림. "내 것이니까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생각. 결과는 파괴와 고갈.
힘 있는 자가 그 힘으로 약한 것을 보호하고 자라게 함. "맡겨진 것이니 잘 돌봐야 한다"는 생각. 결과는 번성과 생명.
성경 곳곳에 숨어 있는 놀라운 생태 이야기 4가지. 카드를 탭해서 뒷면을 확인해보세요.
홍수 후 하나님은 노아와만이 아니라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과도 언약을 맺으셨습니다(창 9:9-10). 무지개는 사람만이 아니라 동물들과도 맺은 우주적 약속의 표입니다.
이스라엘은 7년마다 밭을 쉬게 해야 했습니다(레 25:4). 사람만 안식일에 쉬는 게 아니라, 땅에게도 쉴 권리가 있다는 성경의 놀라운 가르침입니다.
고난받는 욥에게 하나님은 들나귀, 들소, 타조처럼 사람에게 아무 쓸모없어 보이는 야생동물들을 자랑스럽게 보여주십니다. 세상은 사람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니느웨를 아끼시는 이유 중 하나로 "가축도 많이 있다"(욘 4:11)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사람을 넘어 동물에게까지 미칩니다.
요즘 자주 듣는 '기후변화', 쉬운 비유로 이해해봅시다.
지구를 덮은 두꺼운 담요
온실가스는 지구를 감싸는 담요와 같습니다. 담요가 조금 있으면 적당히 따뜻해서 좋지만, 담요를 계속 겹겹이 덮으면 너무 더워집니다. 우리가 석탄과 석유를 태울 때마다 이 담요가 한 겹씩 두꺼워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동물을 어떻게 대하라고 말할까요? 생각보다 많은 규정이 있습니다.
📜 성경 속 동물 배려 규정들
"어차피 지구는 불타 없어질 텐데, 환경을 지킬 필요가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해봅시다.
지구는 결국 다 타서 없어지고 우리는 천국(하늘)으로 떠날 것이므로, 지금 지구를 아껴봤자 소용없다는 생각.
요한계시록 21장에서 새 예루살렘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옵니다. 하나님이 땅을 버리고 사람을 하늘로 데려가시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땅으로 내려오셔서 함께 사십니다(계 21:3).
요한계시록 21-22장은 새 예루살렘이라는 아름다운 도시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장면을 그립니다. 방향이 중요합니다 — 사람이 땅을 탈출해 하늘로 올라가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가 땅으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 21:5)고 말씀하십니다.
낡은 집을 완전히 부수고 새 땅에 새 집을 짓는 것과, 낡은 집을 튼튼하게 리모델링하는 것은 다릅니다. 성경이 그리는 "새 창조"는 철거가 아니라 새롭게 하심(갱신)에 더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버려질 쓰레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완성하실 작품의 재료입니다.
창조 돌봄을 실천해 온 교회들의 이야기를 만나봅시다.
오늘부터 해볼 수 있는 작은 실천들. 체크해보세요!
창조 돌봄을 실천하며 살았던 네 명의 인물을 소개합니다.
해를 '형제', 달을 '자매'라 부르며 모든 피조물을 하나님의 가족처럼 사랑한 중세 수도사. 1979년 '생태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습니다.
평생 새 관찰이 취미였던 20세기 복음주의 대표 지도자. 창조 돌봄을 그리스도인의 제자도의 일부로 가르쳤습니다.
텍사스텍 대학의 기후과학자이자 독실한 복음주의 그리스도인. 신앙과 과학을 함께 붙들고 기후 대화의 다리를 놓는 인물입니다.
1983년 포르투갈에서 새 관찰소를 시작으로 세계적인 기독교 자연보전 운동 A Rocha를 세운 선교사이자 생물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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